아이들은 미국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놀이터에 나가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미국에서는 집 뒷마당에 간이 미끄럼틀, 그네, 모래놀이터 등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놀이터에 가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놀이 시설이 다양하거나 세련되지 않아도 친구들을 만나고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장소로 놀이터가 단연 최고이다. 친구들이라고 해서 학교나 유치원을 같이 다니는 이미 알고 있는 친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알고 지내는 친구도 친구라고 명명하지만 그날 만나면 새로운 친구가 되고 다음번에 우연히 만나면 이미 한번 놀아봤기에 역시 친구이다. 그러다 보니 친구의 폭이 넓어진다. 같은 나이 또래가 아니어도, 같은 피부색이 아니어도, 또한 비슷한 성장 환경이 아니어도 친구가 된다. 아예 처음부터 묻지도 않는다. 한국에서는 처음 만나는 또래 친구라면 이름보다도 먼저 물어보는 것이 나이가 아닌가 싶다. 미국에서는 처음 만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이름이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미 친구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언어만큼 다른 것중의 하나가 친구의 범위이다. 한국에 또래만 친구라고 하고 그 이외에는 아는 동생, 친한 형, 친한 언니, 지인, 인생 선배, 멘토 등 친구라는 말을 아끼고 다른 호칭으로 부른다. 미국은 가족 이외에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모두 친구라고 한다. 남편(참고로 50대)은 교회에서 같이 봉사를 하는 70대 할아버지도 친구이고, 모형 비행기 날리는 취미활동을 통해서 만난 20대 대학생도 친구이다. 5살짜리 우리 막내는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서로 이름을 부르는 친구이다. 바비! 필! 동네 목수 아저씨, 존이 마당에서 일을 할 때마다 그 집에 찾아가서 수다를 떨면서 친해져서 존이 우리 아이에게 베프라는 호칭을 붙여서 이름을 부른다. My best friend, Josiah! 심지어 존은 한국으로 오는 날에는 장시간 비행하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스펀지밥 시리즈와 몇몇 만화 영화를 USB에 담아서 건네주기도 했다. 이쯤 되면 존의 나이를 밝혀주고 넘어가야겠다, 존은 40대 아저씨이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동네 아줌마들의 부러움을 산 것은 영어 실력보다도 선이 없는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한국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친구들이었다. 미국에서는 놀이터에 나가면 누구라도 친구가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알고 있는 친구가 아니면 노는데 같이 끼워주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7, 9세였지만 한국어 실력때문에 학년을 낮춰서 학교를 등록했다. 말이 어눌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르는 아이들한테 같이 놀자고 들이대니 동네 아이들이 뒤로 물러섰다. 나이나 성별에 제한 없이 친구의 벽이 없으니 놀이터에 놀고 있는 누구에게라도 같이 놀자고 했다. 그렇게 하면 미국에서는 다 통했으니까. 미국에서 배운 것이 친구라는 범위에 선이 없으니 선을 넘는 것도 아니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놀자고 들이대는데 야멸차게 거절하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놀다 보면 주파수가 안 맞는다거나 우리 아이들이 아는 놀이가 별로 없고 한국어 이해능력이 떨어지니 같이 놀으려 해도 놀 상대가 안되었다. 또한 영어에는 누나, 형 이런 호칭이 없으니 나이 많은 형한테도 “너”라고 하니 한 살만 많다 하더라도 형이라는 호칭을 부르지 않으면 기분 나빠했다. 존댓말은 곧잘 배웠는데 아직도 엄마한테도 “너(you)”라고 하니 그게 참 고쳐지지 않는다.
한국 생활 10개월이 지나고 보니 놀이터에 나가면 모르는 친구가 없다. 놀이터 형, 놀이터 누나, 놀이터 동생 등등 또래 친구외에 알고 지내는 친구는 다 놀이터에서 인연을 맺었다. 학원 다니느라 놀이터에 노는 아이들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처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오전, 오후 나눠서 놀이터에 출근하다 보면 여전히 놀이터에 오고 가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친구 사귀라고 학원 보낸다지만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아야 맘껏 뛰고 학원 수업이나 활동에 방해 없이 친구도 사귀는다고 믿는다. 물론 덥고 추운 날씨는 놀이터에서 기다려주는 엄마에게는 방해가 되기는 하지만…2월 말인데도 한국 날씨는 왜 이렇게 추운지… 내복에 보온병까지 싸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갔지만 한 시간밖에 버틸 수가 없었다. 더위는 어떻게는 참아보고 책도 읽을 수 있는데 추위는 한 시간이 최대 버틸 수 있는 시간인가 보다. 봄소식을 손꼽아 기다리는 놀이터 죽순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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