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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ing/미국

[미국문화 vs 한국문화] 탕수육 두 접시

by 빛너만 2022.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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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 최고치를 찍는 시국이지만 한국에 머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시간이 날 때마다 바깥 구경을 다닌다. 한국 음식 먹는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 미국 가면 못 먹을 음식들도 먹고 싶은데, 아이들은 푸드코트에 있는 유명 맛집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짜장면, 탕수육이다.  앉자마자 메뉴판은 볼 것도 없이 우리의 만년 메뉴, 탕수육, 짜장, 그리고 짬뽕(엄마 거)…

음식이 나오자마자 짜장 한그릇을 반으로 나눠 두 그릇으로 만들어 아이들 앞에 놓아주고 탕수육을 가운데 놓고 각자 접시에 코를 박고 먹었다. 각자 놓인 짜장면 그릇 안의 면은 사라지고 짜장만 밑바닥에 남았을 즈음… 어디선가 나타나신 아주머니 한분이 

“저 실례한데요, 제가 탕수육을 시켜서 두 조각만 먹었는데 드려도 될까요? 아이들이 참 잘 먹어서요.”

 

“아, 네네…그러세요”

 

상대방이 무안할까 봐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했지만 뭐랄까 이 기분. 요즘 같은 코 시국에 입도 가리고 숨도 참고 사는 시대인데 남이 먹던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가족 밥상에서도 찌개 먹을 땐 각 접시에 덜어먹는데... 당황스럽기도 하고 진심 고맙지 않아서 입에 발린 고맙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아이들은 사정도 모르고 

“좋은 아줌마다. 우와 탕수육이 두 개네.” 라며 좋아했다.

아이들이 배가 고파 보채는 바람에 주방 입구에서 나오는 음식마다 우리 테이블로 오는지 안 오는지 뚫어지게 주시했기에 주변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과 메뉴를 꾀고 있었다. 분명 우리 뒷자리에는 여자분 한분이 앉아있었는데 짜장면과 탕수육이 차례로 날라졌다. 당연히 일행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거기까지가 관찰의 끝이었다. 우리 음식이 나왔으니 뒷자리고 앞자리고 신경 쓸 여념이 없었다. 결국 혼자서 메뉴 두 개를 시켜서 먹었던 것이다. 우리 테이블에 거의 손도 안 댄듯한 탕수육 접시를 놓아주고는 바로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치고 떠나갔다.

탕수육 두 접시

미국 생활 2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생활한 지 8개월 만에 겪은 최대의 난감한 상황…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미국에서라면 이런 상황이 일어났을까? 아님 일어나더라도 좀 다른 방법으로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혼란스러운 생각이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아니 실상 전혀 다른) 대접을 받기는 했었다. 남편과 둘이서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웨이트리스가 오더니 뒤에 앉아있던 신사분이 우리 음식값을 지불하고 갔다는 것이다. 그날따라 남편하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모습을 이쁘게 봤는지, 아님 돈 없는 외국인 유학생 티가 났을 수도 있다. 여하튼 이유는 아직도 미지수. 그런데 이런 일이 또 일어났다. 

한국에서 친정아버지가 미국에 방문하셔서 미국 구경시켜 드린다고 주변을 여행 다닐 때였다. 먼길 오신 아버지 생각해서 고급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고급이래봤자 할인사이트를 이용하면 보통수준의 호텔과 비슷해지니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고급호텔이라서 무료조식이 없는 것이었다. 아뿔사! 할인사이트의 히든상술에 속았다는 생각에 억울했지만 고급호텔 로비 식당에서 없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친정아버지는 딸내미가 미국에서 성공하고 사는 줄 아시는데 지질한 모습 보여드리자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아이들까지 일인당 20달러짜리 조식 뷔페를 먹기로 했다. 역시 고급 호텔이라서 아니 공짜가 아니라서 그런지 조식메뉴가 화려했다. 이왕 먹는 거 고급스럽게 우아하게 먹어주고 있는데 우리 테이블 담당 웨이터가 오더니 우리 식사값을 어떤 손님이 모두 지불하고 갔으니 맘껏 먹으라는 것이었다.  세금까지 포함하면 백 달러가 넘는 금액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남편은 이런 일이 두 번이나 더 있었다. 한국 동료 다섯이서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왁자지껄 떠들면서 신이 나게 마셨단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이 모였으니 그동안 담아두었던 회포를 풀고 있었다. 얼마 후 휠체어에 탄 미국 중년 남성이 테이블로 오더니 

“너희들의 웃음과 우정이 나에게 힘을 주는구나, 내가 맥주를 사도 되겠니” 라면서 맥주값과 안주까지 시켜주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는 퇴역 군인인데 군 근무 시절에 전쟁 중 몸을 다쳐 우울증까지 겪고 있는데 한국사람들의 웃음과 이야기 소리가 그를 즐겁게 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장거리 여행을 하던 중 잠시 들른 시골 식당에서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다가 미국 할아버지한테 대접을 받았다. 작은 식당이라서 큰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소소한 웃음이 오고 갔다. 식당 안 어딘가에 앉아계셨던 한 할아버지가 다가오시더니 너희들 웃음이 보기 좋다고 하시고는 나가셨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달라고 하니 아까 그 할아버지가 이미 내고 가셨다는 거다.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겪었던 이질감 그리고 미국 사람들의 전형적인 개인주의도 아직까지 낯설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따뜻한 마음과 후한 인심으로 인해 외국생활을 잘 지내왔다. 

그런데,

오늘 마지못해 받은 탕수육 접시는 어디에 가서 이야기를 해 봐도 답이 안 나온다. 받기도 그렇고 안 받겠다고 거절하는 것도 답은 아니고… 받아는 놓고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이들은 벌써 탕수육 하나를 집어 소스에 푹 담갔다 입안으로 넣고 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일까? 위생상 아무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다. 기분이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일까? 한국에서 이게 일반적인가? 이런 게 역문화충격인가? 

미국의 경우, 식당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음료의 경우는 리필(refill)은 무제한으로 되니 다 먹고 나서도 음료통에 가득히 담아 나가기도 한다. 두 조각 밖에 먹지 않은 탕수육이 아까웠다면 집으로 싸가지고 가시는 게 좋았을 것을… 인심을 쓰고 싶었다면 차라리 통 크게 음식값을 조용히 내주셨다면… 여하튼 정이 많아도 너무 많은 한국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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