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담 너머 시의 골목에서 만난 보이고 만져지는 시어

빛너만 2022. 2. 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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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상 위에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고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작가의 이름이 반가웠다. 작가로부터 직접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일이라 귀한 선물을 받은 감동이 있었다. ‘()’가 주제인 것은 책 제목을 보고 짐작했고 어떤 시가 담겨있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 유명한 시집을 보는 정도로 시를 대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더욱 접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시들이 있어 읽는 내내 감사했다. 아직은 1부도 다 읽지 못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공감되는 시가 있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시의 골목 행간 풍경

작가: 정민/ 출판사: 고두미

 - 책머리 중에서 발췌

   이 책에 모은 글들은 대부분 내가 평소 가까이 놓고 읽던 시와 시인에 대한 감상이다. 제1부에는 여러 편의 시를 하나의 주제로 꿴 글들을 모았다. 대부분 잡지에 실었던 글이다. 제2부에는 시집 발문과 서평 글에 류선열 시에 관한 글 한 편을 보탰다. 제3부에는 근래 화제가 되었던 문학관과 문인 기념사업에 대한 글을 모았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시와 시인에 관련된 글이라 함께 묶었다.

 

첫 번째로 마음에 들어온 시는 도시의 시간’- 발명의 시간으로 묶은 시들 중 하나이다.

 

「발명가와 자연」 - 손동연

 

그는

꽃을 사랑한 나머지

화분을 발명했다.

 

그는 새를 사랑한 나머지

새장을 발명했다.

 

그는

나무를 사랑한 나머지

분재를 발명했다.

 

그러나

꽃과 나비,

새와 나무의 만남은 끝내 발명하지 못했다.

 

작가는 “자연을 인간의 편의대로 조작하여 인간 중심의 세상에 가두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했다는 것이며, 그 이유가 “사랑한 나머지”다. 이 시에서 사랑은 가두어 소유할 수 있지만 서로 교감하는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작가의 생각에 동감한다.

 

다음은 도시의 시간’- 재배와 사육의 시간으로 묶은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입학식」 – 김봄희

 

먼저 명품 호박 학교에 입학한 호박 싹 여러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자라나는 내일의 호박입니다

지붕이나 들판에서 제멋대로 자라는 호박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그럼 지금부터 우리 학교 교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학생들은 반드시 학교에서 나눠 준 비닐 옷만큼만 커야 합니다

비닐 옷 비집고 나가기 S라인 안 됩니다

벌이나 곤충과의 데이트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 멍 때리기 하지 않는 게 조습니다

그냥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누구나 명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3개월 뒤 명품 호박 졸업식에서

모두 만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100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

백 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이라는 교육, 우리의 미래가 걱정되고 있는 이 시대를 반영하는 시어라서 공감된다. 작가는 어떻게 보았을까?

 

“(생략) ‘새로운 시대’의 학교는 도시노동자를 길러내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견해가 매우 타당해 보인다. ....... 학교의기능은 이제 인품을 고양하기보다는 ”명품“이라는 질 좋은 도시노동자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스스로 배우고 깨우쳐가는 것이 배움이고 그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르침이라고 생각된다. 가르침은, 또 배움은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강요해서는 안 된다. 다만 말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하게 한다. ....... 일방적이다. 학부모는 교육시스템에 끌려가고, 아이들은 학부모와 선생에게 끌려간다.”

 

“재배되고 사육된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나는가? 그들은 ‘반드시 학교에서 나눠 준 비닐옷만큼만 커야’ ‘명품’이 된다. 학생들은 절대 ‘지붕아니 들판에서’ 자라는 애들처럼 ‘제멋대로’행동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도시의 시간’- 도로 위의 시간으로 묶인 시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밥상- 조하연

 

한 손으로

컵라면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휘휘 젓는다.

면발을 불면서

저만치 살피곤

날래게 후룩 밀어 넣는다.

국물이 넘치지 않도록

발들은 번갈아

출렁이는 박자를 달랜다.

다섯 번의 젓가락질

자박자박 국물만 남으면

학원 앞이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가는

기다란 길,

내 밥상이다.

 

건너간다- 류정환

 

직장에선 제법 인정받는 요원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이는 자꾸 늘어서 언제 밀려날지 불안도 할 거고

임대아파트 보증금 걱정이나

홧김에 분양받은 아파트 융자금 이자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십중팔구는

철없는 친정 식구들 때문에 냉가슴도 적잖을 거고

분별없는 참견으로 때때로 어긋나는 칠순 시아버지도 신경 쓰이고

다른 집 애들은 피아노다 영어학원이다 몇 군데씩 돌린다는데

우리 애들만 바보 만드는 거 아닌가 싶어 조바심도 나겠지.

 

낼모레면 새해라고 안팎으로 야단인데

오늘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종종걸음 걷는 여자.

왼쪽도 그렇고 오른쪽도 마뜩찮고

또 한 해를 건너가는 여자

만만한 일 하나 없는 살림살이, 안 봐도 훤하지.

 

작가는 “시계에 갇힌 시간과 재배와 사육의 시간은 사람의 삶을 도로 위로 내몬다. 시 「밥상」은 학교에서 학원으로, 다시 학원에서 학원으로 떠도는 아이의 일상을, 시 「건너간다」는
‘만만한 일 하나 없는 살림살이’를 위해 ‘종종걸음’으로 도시를 떠도는 ‘여자’의 삶을 형상화하였다.”라며, ‘건너간다’의 여자는 ‘밥상’의 “나”의 엄마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세상을 읽어내는 새로운 시어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계속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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